지금은 루이비통이나 꼼데가르송과 같이 명품 브랜드와도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슈프림은 1994년에 길거리에서 태어난 작은 브랜드였습니다. 기득권에 저항하는 문화인 스케이트보드 컬쳐를 겨냥해 만든 브랜드로, 지금의 하이엔드 브랜드와는 거리가 멀었죠.
슈프림은 방송이나 잡지에 돈을 내고 광고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빨간 스티커를 뉴욕 여기저기에 붙여서 사람들이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하게 만들었죠. 케이트 모스의 캘빈 클라인 광고에도 빨간색 로고 스티커를 붙여서 캘빈 클라인은 슈프림을 상대로 고소도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슈프림은 케이트 모스와 실제로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해 티셔츠를 만들어 팔기도 했습니다. 슈프림이 던지는 이러한 저항 문화는 바바라 크루거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붉은색 로고와 함께 엄청난 속도로 인기를 얻게 됩니다.
슈프림은 신비주의와 한정판의 대명사입니다. 일 년에 두 차례 컬렉션을 공개하는 슈프림은, 모든 컬렉션 제품을 동시에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 1회씩 조금씩 조금씩 공개합니다. 슈프림의 설립자인 James Jebbia도 대중에게 드러나는 것을 꺼리고, 많이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새로운 제품이 드롭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몇 시간씩 매장 앞에서 줄을 서는 확고한 팬층을 가진 스트릿웨어 브랜드, 슈프림. 30달러에 정가로 출시한 로고가 찍힌 벽돌이 리셀 시장에서 1,000달러가 되는 슈프림은 베블렌 효과의 대표적인 브랜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스트리트 패션의 대명사로 남아있을 줄 알았던 슈프림이 작년에 VF코퍼레이션에게 인수되었습니다. VF코퍼레이션은 반스와 노스페이스, 디키즈, 잔스포츠, 이스트팩, 팀버랜드, 키플링 등의 브랜드를 갖고 있는 회사입니다. 무려 21억 달러에 인수한 작년 딜 발표 직후에 VF코퍼레이션은 주가가 12.5%나 상승했습니다.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는 스트릿웨어 브랜드가 마치 월 스트리트의 인정을 받은 것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인수는 많은 슈프림 팬들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비록 슈프림이 비싼 가격에 리셀되고 하이엔드 브랜드와 콜라보를 한다고 해도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라는 아이덴티티는 계속해서 유지해오고 있던 셈인데, 이제 슈프림을 소유한 모회사가 대규모 자본가이니만큼 그 의미가 퇴색될 뿐만 아니라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경영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인 것이죠.
이러한 불안을 예상했다는 듯, 인수 발표와 함께 VF코퍼레이션은 슈프림이 이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단독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브랜드 운영은 슈프림의 설립자인 James Jebbia가 그대로 맡게 됩니다.
VF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이번 인수는 '슈프림의 미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미래 성장"이라니, 얼마나 달콤한 이야기인가요? 사람들이 출시를 목말라하는 슈프림은 현재 전 세계 매장 개수가 12개밖에 되지 않고,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일부 제품만 유통할 뿐입니다. 이러한 슈프림이 죔쇠를 조금 열어서 유통을 확장한다면 얼마나 더 많은 매출을 끌어올 수 있을까요?
이번 인수를 두고 슈프림 브랜드가 예전과 같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슈프림은 LVMH와 같이 적은 매장 수, 희소성, 신비성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슈프림은 희소성 위에 존재하는 브랜드입니다. 희소성 때문에 신봉자들이 생기고, 몇 시간씩 줄 서게 만들고, 리셀 가격이 미친 듯 치솟게 만듭니다. 희소성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음 출시 제품이 무엇인지 추리하게 만들고, 248장의 스케이트 보드 덱이 소더비 경매에서 80만 달러에 팔리게 됩니다.
하지만 더이상 슈프림이 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슈프림이 "다운타운 스트릿웨계의 샤넬"이라고 불리지만, 샤넬이 아직 비공개 기업이라는 걸 잊으면 안됩니다.
VF코퍼레이션 인수 발표의 기자 회견에서 슈프림의 설립자 Jebbia는 브랜드가 계속 독립적으로 운영될 것임을 강조하면서도, 월스트리트가 원하는 게 성장임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성장이라는 것은 더 많은 제품, 더 많은 매장 수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금융가들은 슈프림이 돈이 된다고 말하겠지만, 팬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브랜드가 점차 희석되는 걸 느낄 것입니다. 신비감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번 인수는 아웃사이더로 시작한 혁신적 브랜드의 끝이 명백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건일 수 있습니다. 결국 기린아들은 성숙한 기성으로 자라나게 되는 것이죠.
게다가 슈프림의 최근 행보를 보면 이미 슈프림은 신비감을 어느 정도 벗어던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슈프림은 에버라스트, 루이비통, 마이센 도자기 등 브랜드가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희석할 정도로 많은 콜라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중 앞에 잘 드러나지 않던 설립자 Jebbia는 2018년에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 어워드 시상식에 등장해 양복을 빼입고 기쁘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조용히 언더그라운드에서 신비스러움을 유지하기 위한 행보가 아니라, 제도권과 함께 놀려고 적극 노력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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