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에 총 950억 달러의 피해를 일으켰던 6종의 멀웨어에 모두 감염된 노트북을 경매에 올리면 누가 살까요? 나이키 에어맥스의 밑창 쿠션에 요르단 강의 물을 성수라고 넣어서 1,400 달러에 판매한다면 누가 살까요?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방법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팀, MSCHF를 소개합니다. MSCHF는 상식의 범주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성공적인 바이럴 마케팅 프로젝트를 반복해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고정적으로 판매하지 않는데도 MSCHF의 팬층이 생겼고, 이들은 자발적으로 이 브랜드와 연결되고 싶어 합니다.
MSCHF는 스스로를 회사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트 콜렉티브, 밴드, 크리에이티브 레이블이라고 소개합니다. 회사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마법이 사라지기" 때문이죠. 2019년부터 MSCHF는 단 한 가지 목적으로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바로 인터넷을 날려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이들이 뭘 하고 있냐고요? 간단하게 설명하면 2주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마치 슈프림이 새 제품을 온라인으로 "드롭"하는 것처럼 MSCHF.XYZ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프로젝트 중 흥미로운 것 몇 개를 소개할게요.
요르단 강 성수를 넣은 에어 맥스 | 사진: MSCHF
MSCHF가 하는 일이 흥미로운 이유는 아이디어의 참신함 뿐만 아니라 각각의 아이디어를 구현해내는 퀄리티가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Card v Card나 MSCHF BOX, Alexagate 홈페이지를 클릭해 들어가 보세요. 각각의 프로젝트가 고유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의 톤 앤 매너, 인터페이스, 서체, 색상까지 아주 훌륭합니다. 장난 같은 일에 목숨 거는 느낌이랄까요?
예를 들면 위에서 소개한 MSCHF X의 소개 페이지를 가보면 Menifesto로 적어 둔 논리(또는 억지)가 장관입니다.
"스트릿웨어 브랜드들은 마치 카드놀이 하듯 그들의 로고를 서로 교환한다. 브랜드가 얽히고 설켜 라이센스를 주고받는 행위는 모든 브랜드가 하나의 순환 고리로 엮이는 콜라보레이션의 흐름이 될 것이다. 마치 오로보로스의 형태로 라이센스가 순환하는 형태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스트릿웨어는 장르라기보다는, 기능적으로 교체가능한 부분으로 구성된 단일한 슈퍼브랜드(uber-brand)라고 할 수 있다."
"콜라보레이션 연속체(Collaborative Continuum): 각각의 브랜드가 그들만의 고객과 독립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닌, 크로스오버와 콜라보레이션으로 끊임없이 연결된 상태. 표면적으로 볼 때 소비자가 콜라보한 제품을 사면 동시에 두 브랜드에게 이득을 주는 것 같지만, 이것을 별개의 두 브랜드가 아니라 하나로 현현(顯現)된 존재로 간주하는 것"
아, 헛소리 포장을 이 정도는 해야 어디가서 인문학 전공했다고 말할 수 있겠구나라고 느꼈습니다.
MSCHF는 과거에 광고회사였습니다. 매트리스 브랜드 Casper와 같은 클라이언트의 마케팅 업무를 맡아서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클라이언트 업무를 모두 내려놓고 MSCHF 프로젝트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광고를 하지 않을 것이며, 광고를 할 바에야 차라리 회사를 닫을 거라고 말합니다.
MSCHF는 회사의 재무 상태에 대한 질문을 피합니다. 이들은 미스터리함을 유지하는 것이 MSCHF의 유명세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2주마다 공개하는 프로젝트가 모두 돈을 벌기 위한 프로젝트도 아닙니다. 위에서 소개한 Jesus Shoes나 Severed Spots와 같은 프로젝트는 상당한 매출이 발생하는 프로젝트지만 Times Newer Roman이나 Bull & Moon과 같은 프로젝트는 단 1 달러도 벌 수 없습니다. 심지어 Card v Card 프로젝트는 꽁짜로 돈을 뿌리는 프로젝트입니다. MSCHF는 유명세를 이용해 광고 수익을 만들지도 않습니다.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매출이 뉴욕시 근처에서 사는 직원 13명의 월급을 주고도 계속 이 팀을 유지시킬 수 있는 수준인지 알 수 없습니다.
꽥꽥거리는 소리가 나는 대마초용 파이프 | 사진: MSCHF
하지만 미국증권거래위원회에 등록된 MSCHF 관련 문서를 찾아보면 이들이 돈이 궁할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스타트업처럼 투자금을 받아서 활동하고 있으며, 2019년 9월 시드 라운드로 지분을 팔아 350만 달러를 확보, 2020년 1월에 11명의 투자자를 추가로 유치해 800만 달러를 확보했습니다. 궁금한 점은 어떻게 투자자를 설득했을까라는 점입니다. 투자자들을 앞에 세워두고 '우리는 인터넷의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걸 만듭니다.'정도로 이야기했을까요? 이러한 의문에 대해 CEO인 가브리엘 웨일리(Gabriel Whaley)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우리는 마케팅 비용 지출 없이 온라인에서 자발적으로 확산되는 아웃풋을 반복해서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는 마케팅이 필요없다. 우리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경험을 만든다. 사람들은 알아서 공유한다. 우리는 온라인에 친숙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만든다."
"우리는 주변의 제품과 경험을 예상하지 못한 놀라움과 환희의 순간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흔히 말하는 벤쳐 캐피탈 스타트업에 역행하는 기업입니다. SNS를 운영하지도 않고, 수익화를 위해 공격적으로 노력하지 않습니다. 대표 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없죠. 사람들에게 이들의 포트폴리오는 그저 몇몇 성공한 바이럴 캠페인 묶음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웨일리의 말에 따르면 투자자들도 MSCHF가 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투자자들은 예술 프로젝트에 돈을 저당잡힌 셈입니다. 그들은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걸 두려워해야할 거예요."
초음파 스피커를 이용해 아마존 알렉사의 도청 가능성을 차단하는 ALEXAGATE | 사진: MSCHF
MSCHF의 설립자인 가브리엘 웨일리는 엄격한 한국인 엄마와 미군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노스 캐롤라이나의 농장에서 자랐습니다. 웨일리는 어릴 때부터 기린아였습니다.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가 중퇴했는데, 학교에서 기숙사 방의 소지품 검사가 있을 때마다 일부러 뭔가 잡히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면 책장에 <공산당 선언> 책을 올려놓고 소지품 검사관이 이를 알아보는지 시험해보는 것이었죠.
중퇴 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의 철학 전공으로 옮겨갔고, 코딩을 배웠으며, 뉴욕으로 거주지를 옮겨갔습니다. 이때도 자잘하게 미디어의 관심을 받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는데요, 예를 들어 레스토랑에서 여성에게 팁을 줄 때 남녀 임금 격차인 22%만큼 덜 줄 수 있게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앱을 만들었죠. 이 앱에서 계산을 마친 다음에는 백악관에 남녀 임금 불평등에 대한 청원을 넣을 수 있도록 페이지가 이어집니다. 일종의 사회풍자인 셈이죠.
이러한 웨일리의 행보를 보고 버즈피드에서 웨일리에게 일자리를 제안했습니다. 웨일리는 리스티클이나 퀴즈를 만드는 일을 잠시 했지만, 금세 싫증을 느끼고 그만두었습니다. 이후 웨일리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 "페이스북을 해킹하거나 유튜브 최적화 따위 같은 것 없이 인터넷에서 자연스럽게 퍼져나가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MSCHF를 시작했습니다.
CEO 웨일리가 돈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MSCHF가 사람들로부터 받는 관심의 크기가 브랜드나 에이전시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할 정도로 크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마케팅 펌이라면 뭔가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만들어 언론의 주목을 받고, 클라이언트를 수주하거나 다른 회사에 인수되어 엑싯하는 방식을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MSCHF의 스타일이 아닙니다.
어쨌든 MSCHF는 계속 굴러가는 중입니다. 2주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내놓고, 그걸로 어떻게든 돈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신박한 아이디어의 연속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 MSCHF는 아름다운 똥을 만들 수 있을까요?
올해 하반기 중에 뭔가 오프라인 공간을 오픈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물어보니 CEO인 웨일리의 집 뒷마당을 이용해서 뭔가 할 거라는데, 자세한 정보는 안 알려주네요. "인터넷의 뱅크시"라는 별명을 가진 MSCHF가 만드는 오프라인 공간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제대로 이렇다 할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지도 않고, 공격적으로 광고나 SNS 마케팅을 하지도 않는데 MSCHF가 팬을 만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아이디어의 참신함, 오버 퀄리티, 그리고 꾸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린아 같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MSCHF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만듦새가 훌륭합니다. 돈 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라는 생각이 들기에 MSCHF가 더욱 미치고 호기심을 자아내는 팀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쉬지 않고 꾸준히 지속하기에, 팬들은 '아, 다음엔 MSCHF가 무엇을 할까?' 기대하게 되고, 결국 팬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앞으로도 MSCHF가 소개하는 "드롭"이 무엇인지 기대가 됩니다.
Reference:
How to Run a Business in 2020, The New York Times
MISCHIEF MANAGED, The Ver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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